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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피해를 키우는 지반 특성과 지형의 역할

by 돈은 에너지다 2026. 1. 9.

같은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음에도 어떤 지역은 심각한 붕괴와 장기적인 기능 마비를 겪는 반면, 인접한 다른 지역은 비교적 경미한 피해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히 진앙과의 거리나 지진 규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지반의 성질, 퇴적층의 두께, 지형의 형태, 지하수의 분포와 같은 지질학적 조건이 지진파의 증폭과 지속 시간, 파괴 양상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연약한 토양과 매립지, 분지 지형에서는 흔들림이 증폭되고 오래 지속되며, 액상화나 지반 침하 같은 2차 피해가 동반되기 쉽다. 이 글에서는 지반과 지형이 지진 피해를 어떻게 증폭시키는지, 각 요인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이해가 도시 계획과 재난 대응에서 왜 결정적인 의미를 가지는지를 심층적으로 살펴본다. 지진 피해의 크기는 ‘얼마나 흔들렸는가’보다 ‘어떤 땅이 흔들렸는가’에 달려 있다.

지진의 강도는 땅에서 다시 결정된다

지진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주목받는 것은 규모와 진앙 위치다. 하지만 실제 피해를 분석해 보면, 같은 규모의 지진이라도 지역별 피해 편차가 매우 크다는 사실이 반복해서 확인된다. 이는 지진파가 지표에 도달한 이후에도 지반의 성질에 따라 파동의 거동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진파는 공기 중을 전달되는 소리가 아니라, 땅속을 통과하는 탄성파다. 따라서 땅이 단단한지, 느슨한지, 층이 어떻게 쌓여 있는지에 따라 파동의 속도와 진폭, 에너지 분포가 크게 달라진다. 즉, 지진은 진원에서 끝나는 현상이 아니라, 지반을 통과하며 다시 ‘재해로 증폭’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지질학적 관점에서 지진 피해를 이해한다는 것은, 흔들림의 원인보다 흔들림이 전달되는 매질을 이해하는 일이다.

 

지반 증폭의 메커니즘: 느슨한 토양의 공명

지반 증폭은 지진파가 연약한 토양층에 진입할 때 발생하는 대표적인 현상이다. 단단한 암반에서는 지진파가 빠른 속도로 통과하며 에너지가 상대적으로 분산되지만, 모래·점토와 같은 느슨한 토양에서는 파동 속도가 느려지고 진폭이 커진다. 이는 파동 에너지가 좁은 영역에 집중되는 효과를 낳는다.

특히 퇴적층이 두꺼운 지역에서는 지진파가 특정 주파수에서 공명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 이 공명은 건물의 고유 진동수와 맞물릴 경우 피해를 급격히 키운다. 같은 땅 위에서도 저층 건물과 고층 건물이 서로 다른 피해 양상을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매립지와 충적평야의 구조적 취약성

해안 매립지와 하천 주변의 충적평야는 도시 개발에 유리해 보이지만, 지진에는 취약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인공적으로 쌓은 토양은 자연적으로 다져진 지층보다 느슨한 경우가 많고, 지하수위도 높은 편이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지진파 증폭뿐 아니라 지반 변형이 쉽게 발생한다. 지반이 고르게 흔들리지 않고 부분적으로 침하하거나 수평 이동을 보이면, 건물과 기반 시설은 큰 손상을 입는다. 외관상 건물이 무너지지 않더라도, 지반 변형은 장기적인 기능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분지 효과: 흔들림이 빠져나가지 못하는 지형

분지 지형은 지진파를 가두는 역할을 한다. 분지 내부에 연약한 퇴적층이 두껍게 쌓여 있으면, 지진파는 경계에서 반사와 굴절을 반복하며 에너지를 오래 유지한다. 이 현상을 분지 효과라고 한다.

분지 효과가 나타나면 흔들림의 최대 진폭뿐 아니라 지속 시간이 길어져 구조물에 누적 손상이 발생한다. 짧고 강한 흔들림보다, 중간 강도의 흔들림이 오래 지속되는 경우가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남기는 이유다.

액상화: 지반이 지지력을 잃는 순간

액상화는 지진 피해를 급격히 확대시키는 대표적인 지반 현상이다. 포화된 모래층이 강한 진동을 받으면, 입자 사이의 물 압력이 상승해 입자 간 결합력이 사라진다. 이로 인해 토양은 고체가 아닌 액체처럼 거동한다.

액상화가 발생하면 건물은 기울거나 가라앉고, 도로와 지하 시설은 파손된다. 특히 말뚝 기초가 충분하지 않은 구조물은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 액상화는 지진이 끝난 뒤에도 복구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경사지·산지에서의 2차 재해

지진은 평지보다 경사지와 산지에서 또 다른 위험을 만든다. 진동으로 인해 사면의 안정성이 무너지면 산사태, 낙석, 토석류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2차 재해는 지진 직후뿐 아니라 여진이나 강우와 결합해 장기간 이어질 수 있다.

풍화가 많이 진행된 암반, 토양층이 두꺼운 사면, 인위적으로 절개된 경사지는 특히 취약하다. 지형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개발은 지진 시 재난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된다.

지반 정보가 설계를 바꾼다

내진 설계는 단순히 구조물의 강도를 높이는 문제가 아니다. 동일한 건물이라도 지반 조건에 따라 요구되는 설계 기준은 달라진다. 지반 증폭이 큰 지역에서는 진동을 흡수하거나 분산시키는 설계가 필수적이다.

지질 조사와 지반 분석을 통해 위험 지역을 사전에 파악하면, 토지 이용 계획과 건축 기준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이는 재난 발생 이후의 대응보다 훨씬 효과적인 예방 전략이다.

 

지진 피해의 절반은 땅이 결정한다

지진은 막을 수 없지만, 피해의 크기는 선택의 결과다. 연약한 지반, 분지 지형, 액상화 가능 지역은 모두 사전에 파악할 수 있는 요소이며, 이에 맞는 대비가 가능하다.

지진 대응은 흔들림이 시작된 뒤의 행동 요령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어떤 땅 위에 도시를 만들고, 어떤 기준으로 구조물을 세웠는지가 피해 규모를 좌우한다.

결국 지진 피해를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땅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지질학은 그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강력한 도구다.

 

지진 피해를 키우는 지반 특성과 지형 관련 사진
지진 피해를 키우는 지반 특성과 지형 관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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