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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할머니가 냉장고 안에서 집 열쇠를 꺼내셨을 때, 저는 그냥 웃어넘겼습니다. 그게 치매의 신호였다는 걸 한참 뒤에야 알았습니다. 치매는 단순히 깜빡하는 병이 아닙니다. 뇌에서 시작되는 변화가 기억과 성격, 일상 전체를 바꿔놓습니다. 조기에 발견하면 진행을 늦출 수 있는 만큼, 어떤 신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알츠하이머 치매 관련 사진
    알츠하이머 치매 관련 사진

    우리 가족이 놓쳤던 초기 신호들

    외할머니가 같은 말씀을 반복하셨을 때도, 방금 드신 밥을 기억 못 하실 때도, 가족들은 "나이 드시면 다 그렇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점이 바로 병원을 찾아야 했던 때였습니다.

    알츠하이머병(Alzheimer's disease)은 치매를 일으키는 원인 질환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여기서 알츠하이머병이란 뇌 안에 아밀로이드(amyloid)라는 비정상적인 단백질이 쌓이면서 신경세포가 서서히 죽어가는 퇴행성 질환입니다. 문제는 이 변화가 증상이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시작된다는 점입니다. 기억력이 떨어진다고 느끼는 시점에는 이미 뇌에서 상당한 변화가 진행된 경우가 많습니다.

    알츠하이머병에서 가장 먼저 손상되는 부위는 내측 측두엽(medial temporal lobe), 그중에서도 해마(hippocampus)입니다. 해마란 새로운 기억을 만들고 저장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뇌 구조물로, 여기가 손상되면 최근 일은 기억하지 못하면서 수십 년 전 옛 기억은 또렷하게 남는 특이한 패턴이 나타납니다. 외할머니께서 어제 있었던 일은 기억 못 하시면서 40년 전 이야기를 생생하게 하셨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옛날 기억을 잘하니까 괜찮다"는 말은 오히려 전형적인 알츠하이머 초기 증상을 보고 한 말일 수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 말이 맞는 줄 알았으니까요.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초기 신호도 있습니다. 치매를 유발하는 퇴행성 변화가 시작될 때, 냄새를 담당하는 후각 신경망이 먼저 손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밥맛이 없다", "냄새가 잘 안 난다"는 말이 단순한 노화가 아닐 수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렘수면행동장애(REM sleep behavior disorder)도 주목해야 합니다. 렘수면행동장애란 꿈을 꾸는 수면 단계에서 몸의 움직임이 억제되지 않아, 자면서 소리를 지르거나 팔다리를 심하게 움직이는 증상입니다. 본인은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함께 사는 가족이 먼저 알아채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도인지장애, 치매 전 단계를 알아야 하는 이유

    검사를 받고 나서 의사에게 들은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습니다. "치매 진단이 나왔을 때 이미 10년 전부터 뇌에서 변화가 시작됐을 수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인지기능 저하는 어느 순간 갑자기 발생하는 게 아닙니다. 정상 상태에서 치매로 넘어가는 사이에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 그 중간 단계를 경도인지장애(MCI, Mild Cognitive Impairment)라고 합니다. 경도인지장애란 인지기능 검사에서 나이와 학력을 고려했을 때 저하가 확인되지만, 일상생활을 독립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단계에서 발견하면 치매로 진행하는 속도를 늦출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치매 단계를 구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주관적 인지 저하: 본인은 기억력이 떨어졌다고 느끼지만 검사 결과는 정상 범위인 단계
    • 경도인지장애(MCI): 검사에서 인지기능 저하가 확인되지만 일상생활 능력은 유지되는 단계
    • 치매: 인지기능 저하로 인해 일상생활 능력에 실질적인 문제가 생긴 단계

    문제는 경도인지장애 단계에서 병원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치매라는 말이 무서워서", "설마 치매겠어"라는 이유로 진단을 미루는 경우가 여전히 많습니다. 중앙치매센터 자료에 따르면 국내 치매 환자 10명 중 7명 이상이 증상 발생 후 1년이 지나서야 처음 진료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중앙치매센터).

    의료 기술이 발전하면서 아밀로이드 PET(양전자 방출 단층촬영)를 통해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도 뇌 안의 아밀로이드 축적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밀로이드 PET란 뇌에 비정상적인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얼마나 쌓여 있는지를 영상으로 확인하는 검사로, 일반 CT나 MRI로는 초기 변화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보완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검사 옵션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막연한 두려움보다 구체적인 행동을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치매 진단 이후, 가족이 할 수 있는 것들

    외할머니가 치매 진단을 받았을 때, 가족들은 일단 멈췄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막막함이 먼저였습니다. 그런데 의사에게 들은 말이 생각을 바꿨습니다. "초기에 치료를 시작하면 5년 후 요양시설로 가는 비율을 절반 이상 줄일 수 있습니다."

    치매는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완치는 어렵지만 관리가 가능한 질환입니다. 초기에 콜린에스테라아제 억제제(cholinesterase inhibitor) 계열의 약물 치료를 시작하면 신경전달물질의 분해를 억제해 증상 진행을 늦추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콜린에스테라아제 억제제란 뇌에서 기억과 학습에 관여하는 아세틸콜린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너무 빨리 분해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약물입니다. 약만큼이나 중요한 게 생활 관리였습니다. 저희 가족은 진단 이후 외할머니와 함께 산책을 시작했고, 식사 후 짧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보건복지부 치매 정책에 따르면 전국 256개 치매안심센터에서 인지기능 검사, 치매 조기 발견, 상담, 돌봄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출처: 보건복지부). 제 경험상 이런 지역사회 자원을 미리 파악해 두는 것만으로도 보호자의 심리적 부담이 꽤 줄어듭니다. 환자를 혼자 감당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아는 것 자체가 힘이 됩니다.

    치매가 무서운 이유는 환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보호자가 하루 평균 8시간 이상 돌봄에 투입되는 현실은, 이 병이 가족 전체의 삶을 바꿔놓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완전히 예전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더라도, 진행 속도를 늦추는 것만으로도 환자와 가족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납니다. 저는 그 경험을 통해 그걸 직접 확인했습니다.

    치매가 의심된다면 "아직 아닐 것"이라는 생각보다 "지금 확인하자"는 쪽으로 움직이는 게 맞습니다. 가까운 치매안심센터나 신경과 외래를 먼저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초기 발견과 꾸준한 관리가 가족 모두의 삶을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료 조언이 아닙니다. 증상이 의심될 경우 반드시 전문의 진료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CQsGYVfosC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