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압도 그냥 "좀 높은 편"이고, 배도 살짝 나왔고, 잠도 늘 부족했던 분이 어느 날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졌습니다. 저는 그 순간을 직접 옆에서 봤습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그분은 한 번도 "나 아프다"라고 말한 적이 없었습니다. 만성염증이란 바로 그런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소리 없이 쌓이다가, 어느 날 갑자기 터집니다.

HS-CRP로 만성염증을 확인할 수 있을까
혹시 건강검진 결과지에서 CRP라는 항목을 본 적 있으십니까? 대부분 그냥 넘기거나, 수치가 낮으면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하고 지나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HS-CRP(고감도 C반응단백)는 우리 몸에 염증 반응이 일어날 때 간에서 분비되는 단백질을 측정하는 지표입니다. 여기서 HS-CRP란 일반 CRP 검사보다 훨씬 민감하게 미세한 염증 수준까지 감지할 수 있는 혈액 검사 수치로, 만성염증의 정도를 판단하는 데 의학적으로 광범위하게 활용됩니다. 우리나라 기준으로는 0.2 이하가 정상이며, 0.2를 넘으면 만성염증이 진행 중일 가능성을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이 검사는 일반 건강검진 항목에 자동으로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담당 의사에게 따로 요청해야 측정되는 수치입니다. 실제로 서울대학교병원 신경과 이승훈 교수는 이 지표가 만성염증을 평가하는 임상적으로 중요한 근거가 된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만성염증을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지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HS-CRP: 0.2 이상이면 만성염증 가능성 검토 (국내 기준)
- 당화혈색소(HbA1c): 6.0% 이상이면 당뇨 전단계 범주
- 허리둘레: 남성 95cm, 여성 85cm 초과 시 내장지방 과잉 의심
- 혈압: 130/85mmHg 초과 시 혈관 건강 주의
다만 이 수치들은 단독으로 판단하면 안 됩니다. 저는 이 내용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그럼 나도 당장 검사해봐야 하나"라는 불안이 먼저 들었습니다. 수치 하나만 보고 과도하게 걱정하기보다는, 전체적인 건강 상태와 함께 주치의와 상담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장지방이 만성염증을 키우는 이유
"나는 마른 편인데 당뇨가 생겼어요"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체중만 보면 전혀 이상이 없는 것 같은데 왜 그럴까요. 제 주변에도 겉으로는 말라 보이는데 혈당이 높아서 당황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내장지방에 있었습니다.
내장지방이란 피부 밑 지방이 아니라 복강 내 장기 주변에 쌓이는 지방을 말합니다. 겉에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체중이나 BMI만으로는 파악이 어렵습니다. 문제는 이 내장지방이 단순히 저장 공간이 아니라 호르몬 분비 기관처럼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지방세포가 비대해질수록 염증을 악화시키는 사이토카인(cytokine), 즉 염증 촉진 신호 물질을 더 많이 방출합니다. 사이토카인이란 세포와 세포 사이에서 염증 반응을 조율하는 단백질로, 균형이 무너지면 만성염증의 연료가 됩니다.
특히 살이 찌면 지방세포의 수가 늘어나는 게 아니라 부피가 커집니다. 이론적으로는 50kg인 사람과 고도비만인 사람의 지방세포 수는 동일하고, 크기만 다릅니다. 어마어마하게 커진 지방세포는 지방을 감당하지 못하고 지방산을 밖으로 흘려보내는데, 이게 인슐린 신호 전달을 방해하면서 당뇨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시작이 됩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혈당이 올라가고, 혈당이 오르면 더 살이 찌고, 만성염증은 더 깊어집니다.
저 역시 피곤할 때 단 음식이나 부드러운 빵으로 버티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내용을 접하고 나서 제 식습관이 얼마나 염증에 우호적인 환경을 만들어왔는지 새삼 실감했습니다. 정제된 탄수화물은 소화 부담이 없어서 몸이 좋아하지만, 그만큼 혈당을 빠르게 올리고 칼로리 과잉을 부릅니다. 거친 음식, 통곡물처럼 몸이 일을 해야 하는 음식을 먹는 게 염증 관리의 첫걸음이라는 말이 단순해 보여도 실천이 어렵다는 걸 저는 몸으로 알고 있습니다(출처: 대한비만학회).
수면이 뇌 청소를 결정한다
잠을 잘 못 자면 그냥 다음 날 피곤한 정도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습니까? 저도 오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수면과 뇌 건강 사이의 연결고리는 생각보다 훨씬 구체적이었습니다.
글림프 시스템(glymphatic system)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글림프 시스템이란 우리가 깊은 수면 상태에 들어갔을 때만 활성화되는 뇌의 노폐물 청소 기전으로, 낮 동안 뇌에 쌓인 아밀로이드(amyloid) 같은 독성 단백질 찌꺼기를 씻어내는 역할을 합니다. 아밀로이드란 신경세포 사이에 축적되는 비정상적인 단백질 덩어리로, 수년에 걸쳐 쌓이면 알츠하이머 치매의 주요 원인이 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청소 시스템은 수면 3~4단계, 즉 깊은 수면 구간에서만 작동하며, 얕은 수면을 반복하거나 수면이 중간에 끊기면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술을 마시고 자면 잠이 잘 드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알코올은 뇌 활동을 억제해 수면을 유도하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실제로는 깊은 수면 단계로 진입하지 못하게 방해하기 때문에, 뇌 청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멜라토닌(melatonin)은 이와 다릅니다. 멜라토닌이란 뇌의 송과샘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수면 시간이 됐음을 몸에 알려주는 신호 역할을 합니다. 수면제처럼 즉각적인 효과를 내는 게 아니라, 꾸준히 같은 시간에 복용하면서 몸이 수면 리듬을 다시 기억하도록 훈련하는 개념입니다.
잠들기 전 2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빛 자극과 정보 자극은 뇌에게 아직 활동 시간이라는 신호를 보내기 때문에,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합니다. 제 경우 침대에 누워서도 한참 휴대폰을 보다 잠드는 습관이 있었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으로 끊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 원리를 알고 나서부터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수면의 질과 인지 기능의 연관성은 국내 연구에서도 확인되고 있습니다(출처: 국립정신건강센터).
결국 만성염증은 어느 하나의 원인으로 생기는 병이 아닙니다. 먹는 것, 자는 것, 움직이는 것이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지는 환경입니다. 저는 이 내용을 접하면서 "관리는 병이 생긴 다음에 하면 된다"는 생각을 버리게 됐습니다. HS-CRP 수치 하나, 허리둘레 하나, 수면 시간 하나가 사소해 보여도, 그것들이 10년을 쌓이면 혈관과 뇌에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지금 당장 극적인 변화가 느껴지지 않더라도, 오늘 밤 잠자리에 들기 전 휴대폰을 조금 일찍 내려놓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 조언이 아닙니다. 건강 상태에 대한 판단과 치료는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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