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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에서 "술 좋아하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얼굴이 노랗게 변하는 걸 직접 본 적이 있습니다. 처음엔 그냥 피곤한 거겠거니 했는데, 병원에서 돌아온 그 사람의 표정은 달랐습니다. 간 수치 이상, 지방간. 그래도 그날 저녁 술을 마셨습니다. 그 장면이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술 먹은 사람 사진
    술 먹은 사람 사진

    아프지 않으니 괜찮다는 착각, 지방간의 시작

    술을 꽤 마시는 분들께 한 가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지금 몸에 아픈 곳이 있으신가요? 아마 대부분은 "딱히 없다"라고 하실 겁니다. 그게 바로 문제입니다.

    알코올은 혈관을 타고 간으로 이동한 뒤, 간에 있는 효소에 의해 아세트알데히드(acetaldehyde)라는 물질로 분해됩니다. 아세트알데히드란 알코올이 1차 분해될 때 생기는 독성 중간물질로, 두통이나 구역감 같은 숙취 증상의 주된 원인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다시 아세트산으로 바뀌고 이산화탄소와 물로 배출되는 것이 정상적인 경로입니다.

    그런데 과음을 하면 이 과정이 따라가지 못합니다. 배출되지 못한 아세트산 일부가 지방산으로 전환되어 간세포 안에 쌓이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지방간(alcoholic fatty liver)입니다. 지방간이란 간세포 안에 지방이 5% 이상 비정상적으로 축적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통증도 없고, 황달도 없고, 피로감 정도만 느껴질 뿐입니다. 제가 옆에서 지켜봤던 그분도 "나이 탓이겠지"라고 몇 달을 넘겼습니다.

    간을 '침묵의 장기'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간 기능이 절반 가까이 손상될 때까지도 뚜렷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증상이 없다는 것 자체가 간질환의 가장 무서운 특징입니다.

    매일 조금씩 마셔도 괜찮을까, 알코올성 간질환의 진행

    "저는 많이 마시는 게 아니라 매일 조금씩만 마셔요"라는 말,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도 한때 그 말이 맞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알코올성 간질환(alcoholic liver disease)이란 지속적인 음주로 인해 간에 염증, 섬유화, 기능 저하가 단계적으로 진행되는 질환을 통칭합니다. 지방간에서 알코올성 간염(alcoholic hepatitis)으로, 다시 간경변증(liver cirrhosis)으로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음주량이 매번 적더라도 매일 간이 독성물질에 노출된다면 경과는 다르지 않습니다.

    적정 음주량 기준을 살펴보면, 미국 국립알코올남용·중독연구소(NIAAA)의 기준을 국내 단위로 환산했을 때 남성은 하루 소주 반 병, 여성은 그 절반 수준이 상한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기준을 초과하는 음주가 습관화될 경우 알코올성 간질환 위험이 유의미하게 높아집니다.

    특히 여성의 경우는 더 각별히 주의가 필요합니다. 여성은 체내 수분 비율이 낮고 체지방 비율이 높아, 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혈중 알코올 농도가 남성보다 높게 올라갑니다. 또한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알코올 분해 효소의 작용을 저해하는 역할을 해, 알코올 분해 자체가 느립니다. 이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적은 양의 음주로도 더 빠르게 간 손상이 진행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성인 여성의 음주율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닙니다.

    술의 종류에 대한 오해도 짚고 싶습니다. "막걸리는 발효주니까 괜찮다", "좋은 양주는 덜 해롭다"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술의 종류나 가격이 아니라 순수 에탄올의 섭취량입니다. 막걸리 한 병이든 소주 한 잔이든, 몸에 들어간 알코올 총량이 간 손상의 정도를 결정합니다.

    간경변증이 되면 무슨 일이 생기나

    간염이 반복되면 간은 어떻게 될까요? 상처가 반복되면 흉터가 남듯, 간도 염증이 지속되면 정상 세포 대신 딱딱한 섬유 조직이 그 자리를 채우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간경변증입니다.

    간경변증(liver cirrhosis)이란 지속적인 손상으로 간 조직이 섬유화 되어 굳어지고, 간의 정상적인 기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다양한 합병증이 함께 나타납니다.

    간경변증이 진행될 때 나타날 수 있는 주요 합병증은 다음과 같습니다.

    • 복수: 간이 수분 조절 단백질을 충분히 만들지 못해 복강 안으로 액체가 고이는 현상
    • 식도정맥류: 간으로 가는 혈관이 막혀 식도와 위 주변 혈관이 부풀어 오르는 상태로, 터지면 대량 출혈로 이어질 수 있음
    • 간성 혼수(hepatic encephalopathy): 장에서 생성된 독소가 뇌로 유입되어 뇌 기능이 마비되는 상태로, 심한 경우 의식을 잃음
    • 자발성 출혈: 간이 혈액 응고 인자를 제대로 생성하지 못해 별다른 외상 없이도 출혈이 발생하는 상태

    이런 합병증이 복합적으로 동반될 경우 1년 내 사망률이 50%를 넘는다는 점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국내 연구에 따르면 간경변증 환자의 장기 사망률은 위암, 폐암, 대장암, 유방암 등 5대 암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높다는 결과가 있을 정도입니다(출처: 대한간학회).

    제가 직접 곁에서 지켜봤을 때, 간경변 초기 진단을 받고도 술을 계속 마셨던 그분이 "아프지도 않은데"라고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그 말이 지금도 마음에 걸립니다. 증상이 없다는 건 괜찮다는 뜻이 아니라, 아직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술자리 문화가 바뀌어야 간이 산다

    그렇다면 술을 끊지 못하는 건 순전히 개인 의지의 문제일까요? 저는 그렇게만 보기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술을 거절하면 분위기를 깬다는 인식, 술잔을 돌리는 관행, 술을 잘 마시면 사회성이 좋다고 여기는 문화는 아직 우리 주변에 남아 있습니다. 개인이 아무리 절주를 결심해도, 술을 권하는 자리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결심은 쉽게 무너집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각 나라별 알코올 관리 수준을 평가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국가적으로 음주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부족한 나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출처: 세계보건기구).

    알코올성 간질환의 근본적인 치료는 금주입니다. 약물로 수치를 낮추는 것은 보조적인 방법일 뿐, 원인을 그대로 두고 약을 먹는 것만으로는 진행을 막을 수 없습니다. 금주가 어렵다면 최소한 일주일에 2~3일은 음주를 하지 않는 날을 정해 간에 회복할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술자리에서도 조금씩 문화를 바꾸는 것이 가능합니다. 술잔을 돌리지 않고 각자의 잔에 따라 마시는 것, 마시지 않겠다는 선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시작입니다. 개인의 의지와 함께 주변의 문화가 같이 바뀌어야 합니다.

    술과 간의 관계를 알게 된 뒤로 저는 술자리에서 분위기를 보는 눈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지금 당장 아프지 않다는 것과 앞으로도 괜찮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1년에 한 번 정도 간 초음파 검사나 혈액 검사를 통해 간 섬유화 수준과 간 수치(ALT, AST)를 확인해 보는 것을 권합니다. 건강은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말은 간에 관해서는 특히 더 맞는 말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 조언이 아닙니다. 간 건강과 관련된 증상이 있다면 반드시 전문 의료기관을 방문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ox-WSDek98I